숨겨진 위기: ‘조용한 퇴사’가 드러내는 현대 조직의 망가진 피드백 루프
직원의 절반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건 유행이 아니라 5,000억 달러짜리 경고 신호다.
2024년, 미국의 직원 몰입도는 31%까지 급락하며 지난 10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 충격적인 건 갈럽(Gallup) 연구 결과다. 미국 노동자의 최소 50%가 이제 “조용한 퇴사자(quiet quitters)”로 분류된다. 몸은 출근해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퇴사한 상태인 사람들이다. 전 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상황은 더 어둡다. 직원의 59%가 몰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연간 약 1조 5,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영진이 놓치는 핵심이 있다. 조용한 퇴사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55년 된 경제학 이론이 지금 현실에서 그대로 재생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조직이 쇠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라는 근본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1970년,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Albert Hirschman)은 『Exit, Voice, and Loyalty』라는 책에서 기업·조직·심지어 국가까지 “상황이 나빠질 때 개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설명하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틀을 제시했다. 허시먼이 말한 세 가지 반응은 다음과 같다.
- Exit(이탈):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떠난다
- Voice(발언): 문제를 말하고 변화 요구를 한다
- Loyalty(충성/유지): 애착이나 투자 때문에 문제를 알면서도 남는다
이후 학자들은 네 번째를 추가했다.
- Neglect(방치/무관심): 몸은 남아 있지만 관여를 끊고 서서히 무너뜨린다
오늘날의 조용한 퇴사 확산은, 교과서적인 Neglect다. 직원들이 왜 이탈(Exit)도, 발언(Voice)도 아닌 방치(Neglect)를 택하는지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조직이 맞닥뜨린 가장 시급한 문제를 푸는 열쇠다.
직원 반응의 ‘4분면 현실’
전통 경제학은 불만이 있으면 사람들이 “발로 투표한다”고 가정한다. 불만족한 고객은 제품을 바꾸고, 불행한 직원은 이직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허시먼은 현실이 훨씬 더 미묘하다는 걸 봤다. 이를 오늘날 직장 행동에 대응시켜 보면, 네 가지 패턴이 드러난다.
Exit (능동 + 파괴적)
2021~2022년의 ‘대퇴사(Great Resignation)’가 대표적이다. 2022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5,000만 명이 직장을 그만뒀다. 이탈은 조직에 가장 분명한 신호를 보내지만, 동시에 개선에 필요한 피드백도 함께 가져가 버린다.
Voice (능동 + 건설적)
직원이 심리적으로 안전하고, 자신의 의견이 의미가 있다고 믿을 때 발언한다. 링컨 파이낸셜(Lincoln Financial)은 강력한 ‘직원 리스닝 시스템’을 구축한 뒤, 설문 응답자의 76%가 “조직 안에서 전문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업계 평균보다 8%p 높음). Voice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는 기업은 몰입된 직원을 유지할 가능성이 12배 높고, 수익성도 21% 더 높다.
Loyalty (수동 + 건설적)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곧 나아질 것”을 믿고 남아 있는 ‘인내하는 이해관계자’다. 연구에 따르면 충성은 완충 역할을 한다. Exit를 지연시켜 Voice가 작동할 시간을 벌어준다. 하지만 충성에는 한계가 있고, 최근 데이터는 그 한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Neglect (수동 + 파괴적)
조용한 퇴사자. 개선도 포기도 포기한 사람. 이 분면이 가장 위험한 이유는, 손상이 크게 누적되기 전까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Exit나 Voice가 아니라 Neglect를 택할까
조용한 퇴사의 폭발은, 수백만 명에게 Neglect가 “합리적인 선택”이 되게 만드는 세 가지 힘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다.
1) Exit 장벽이 높아졌다
2021~2022년 노동시장은 근로자에게 유리했지만, 2024년은 다르다. 테크 업계 해고, 채용 동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사람이 늘었다. Indeed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코리 스타흘레(Cory Stahle)는 이렇게 말한다.
“고용시장이 예전만 못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현재 역할에 머물고 있고, 이 경험을 바꿀 쉬운 출구가 없습니다.”
고전 경제학이라면 Exit가 막히면 Voice가 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신 “quiet cracking(조용한 크래킹/균열)”이 늘고 있다. TalentLMS가 만든 이 용어는, 직장 불행이 지속되지만 대놓고 맞설 에너지는 없어 관여만 끊어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직원의 54%가 간헐적이든 지속적이든 quiet cracking을 경험한다.
2) Voice 메커니즘이 고장 났다
딜로이트의 2024 글로벌 인적자본 트렌드 보고서는, 직원의 86%와 리더의 74%가 “신뢰와 투명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에는 솔직한 피드백이 오갈 효과적인 통로가 없다고 지적한다. “말해봤자 안 바뀐다”거나 “말하면 손해다”라고 믿는 순간, 침묵은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데이터는 더 잔인하다. 스스로 조용한 퇴사자라고 밝힌 사람들 중 69%가 지난 1년 동안 직장에서 경고를 받았고, 거의 4분의 3은 해고를 경험했다. 이건 악순환이다. 말하는 건 위험해 보이니 빠지고, 그런데 빠진 상태 자체가 해고 사유가 되고, 결국 “Voice는 위험하다”는 믿음이 더 강화된다.
3) Loyalty 계약이 깨졌다
과거 장기근속을 보상하던 연금과 보험 같은 혜택은 비용 절감 논리로 해체되어 왔다. 그 빈자리에 직원들이 우선시하는 것은 워라밸, 자기개발, 개인 가치와의 정렬 같은 요소인데, “한 회사에 대한 충성”만으로는 이런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갈럽 연구에 따르면 몰입도 하락은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됐고, 이는 퇴사 증가와 맞물린다. 특히 35세 미만, 즉 팬데믹 중/이후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세대에서 하락폭이 가장 컸다. 35세 미만 몰입 직원 비율은 2019년에서 2022년 사이 4%p 감소했으며, 관리자로부터 ‘배려받는다’는 느낌과 성장 기회를 얻는다는 인식이 크게 떨어졌다.
결과는 명확하다. 대규모 해고, 깨진 약속, 경제 불안정을 목격하며 자란 세대는, 애초에 되돌려주지 않을 조직에 충성을 투자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숨은 비용: 조직이 ‘Exit’만 측정할 때
대부분의 조직은 이직률(Exit)을 집요하게 추적하지만, Neglect는 너무 늦게 알아차린다. 이것이 허시먼이 경고한 “정보 없는 Exit”를 만든다.
품질에 민감한 고객이나 고성과자가 떠날 때, 그들은 문제의 진단에 필요한 피드백까지 함께 들고 나간다. 조직은 “뭔가 잘못됐다(사람이 떠난다)”는 건 알지만, “무엇이 잘못됐는지”와 “어떻게 고칠지”를 알기 어렵다. 반면 남아서 조용히 관여를 끊는 사람들(Neglect)은 신호 자체를 주지 않는다. 품질은 떨어지는데, 데이터는 “유지율 안정”처럼 보인다.
고객 관계 연구는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통신, 은행, SaaS 업계 연구들은 기존 고객 유지 비용이 신규 고객 확보 비용의 57분의 1에 불과하고, 유지율을 5%만 개선해도 이익이 2595%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확보에 막대한 돈을 쓰면서도, 기존 고객의 Voice를 듣는 메커니즘은 원시적인 경우가 많다.
SaaS 스타트업 Groove는 이 교훈을 비싸게 배웠다. 신규 사용자 성장은 꾸준했지만 월간 이탈률 4.5%가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체계적으로 사용자 행동을 분석했을 때 비로소 “레드 플래그 지표(Red Flag Metrics)”—첫 세션이 너무 짧거나 로그인 빈도가 낮은 신호—가 이탈을 예측한다는 걸 발견했다. Groove는 이 인사이트로 표적 개입을 설계했고, 26% 응답률을 달성했으며 온보딩을 완료한 사용자의 30일 유지율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핵심 교훈은 이것이다.
- Exit 데이터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만 알려준다.
- Voice 데이터는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고칠지’를 알려준다.
Voice–Exit 균형: 성공 사례에서 배우는 것
허시먼의 프레임을 잘 다루는 조직은 대체로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1) Voice를 ‘안전하고, 실제로 작동하게’ 만든다
마스터카드(Mastercard)는 분기별 펄스 설문과 타운홀을 결합해, 리더십이 직원 우려를 직접 다뤘다. 중요한 건 피드백 루프를 닫았다는 점이다. 무엇이 반영됐고, 무엇은 왜 어려웠는지 직원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Voice가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진짜 대화가 된다.
e&(구 Etisalat Group)은 다양성·형평성·포용(DEI) 싱크탱크를 만들어, 다양한 배경과 직급의 목소리를 모았다. 장식이 아니었다. 피드백이 실제 전략과 정책에 반영됐고, 직원들은 “내 말이 변화를 만든다”는 걸 보면서 몰입이 상승했다.
2) Voice와 Exit 가능성을 균형 있게 둔다
역설적으로, Voice가 힘을 가지려면 믿을 만한 Exit 옵션이 필요하다. 사람이 갇혀 있으면 Voice는 약해진다. 조직은 “어차피 못 나가”를 알기 때문이다. 허시먼은 권위주의 체제가 이민을 막으면 반대 목소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고용주에게도 비슷한 역학이 작동한다.
진보적인 조직은 외부 기회를 투명하게 다루거나, 내부 이동을 적극적으로 열어 **“내부 Exit”**처럼 기능하게 만든다. 문제 팀이나 문제 상사를 ‘떠날 수는 있지만 조직은 떠나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3) Loyalty를 ‘당연한 의무’가 아니라 ‘획득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가장 성공적인 조직은 “고용했으니 충성하라”는 발상을 버렸다. 대신 방정식을 뒤집는다. 조직이 먼저 직원에게 충성을 보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직원이 통제할 수 있는 역량 개발 예산, 투명한 승진 기준, 말이 아닌 진짜 워라밸 같은 것들이다. 링크드인 파이낸셜(LinkedIn Financial)이 이런 원칙을 Voice 시스템과 결합했을 때, 단순히 이탈을 줄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몰입된 직원들이 다른 인재를 데려오는 선순환이 생겼다. 채용 비용은 내려가고, 인재 품질은 올라갔다.
실전 진단 프레임: Exit–Voice 진단법
조직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궁금한 경영진을 위한 진단 틀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4분면을 측정하라 (Exit만 보지 말고)
- Exit Rate: 표준 이직률
- Voice Activity: 제안 건수, 문제 제기 빈도, 피드백 참여율
- Loyalty Depth: 근속 연수 분포, 내부 승진율, 추천 채용 비율
- Neglect Indicators: 생산성 하락(Exit 없음), 비필수 활동 참여 저조, 문제 상황에서의 침묵
대부분의 조직은 첫 번째만 추적한다. 탁월한 조직은 네 가지를 모두 추적하고 그 상호작용을 이해한다.
2. Voice의 장벽을 찾아라
익명 설문을 통해 직원들이 왜 침묵하는지 물어보라:
-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다” (Voice 회의론)
- “불이익이 걱정된다” (심리적 안전 실패)
이 답변 비율이 높다면, 당신의 조직은 이미 Neglect의 늪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